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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김현이 좋아한 김은지의 시
    내가 좋아한 그 사람의 시 2023. 4. 4. 11:22

    내가 아는 시 가장 잘 쓰는 사람*

     

     

     

    그 사람은,

     

    그 사람은,

    그 아이는 모든 백일장에서 장원이었다

    한번은 월요일 조회 시간에

    교단에서 상을 받고 내려갔다가

    다시 이름이 불려 올라갔다가

    하나 더 받아야 하니 내려가지 말라고 해서

    학생들도 교장 선생님도 웃었던 적이 있다

     

    그건 어떤 기분일까

     

    글 잘 쓰는 학생이 많은 고등학교였는데도,

    주최 측에서도 좀 여러 학생 나눠주고 싶었을 텐데도,

    도저히 그럴 수 없이 인정하는

    너무 뛰어난 글

     

    내가 하도 신기해하니까,

    그 애를 잘 아는 친구가 말해 줬다

    아빠가 국어 선생님이라서 그래

    어릴 때부터 항상 시집을 읽는대

     

    중학교 땐가 캠핑 갔을 때

    그 애와 내가 같은 조가 된 적이 있다

    나는 김치볶음밥을 맛있게 해 주겠다고 몇 번이고 약속했다

    그 애는 나에게 연세대라는 단어를 처음 알려 줬다

     

    난 연세대에 가고 싶어.”

    거기가 어딘데?”

    공부 아주 잘 해야 갈 수 있어.”

    근데 왜 난 몰라? 안 좋은 학교 아니야?”

     

    연세대만 보면

    연세대가 과연 좋은 학교인지 궁금해했던

    캠핑장 수돗가가 떠오른다

     

    대학에 가서도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

    고향 떠나 대학 생활이 어떤지

    시험을 다시 치는 건 어떨까 고민했던 것 같다

     

    대구에 지하철 화재 사고가 났다

    그 아이가 탄 것 같다고 했다

    218일 오전 953

     

    다 똑같지 뭐

    그 아이를 좋아했던 친구는 나중에

    무언가가 다 똑같은 일이라고 했다

    뭐가 똑같다는 건지……

    몰랐지만 물어보지 않았다

     

    대체 얼머나 글을 잘 쓰면

    대회마다 장원일까

     

    교지에 실린 그 아이의 시를 펼쳐 보았다

    기도라는 제목이었고

    할 말이 많아 멈추지 않는 파도처럼

    첫 줄에 소름이 확 끼쳤다

     

    시 잘 쓰는 사람에 대한 얘기만 하면

    그 아이 생각이 난다

     

    그 아이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이

    얼마나 까맣게 빛났는지

    나는 말하지 못한다

     

    수학을 그토록 싫어했고

    언어 영역을 얼마나 잘했는지

    감정을 숨기지 못하던 표정을 기억하냐고

    묻지 못한다

     

    복통을 느끼면서 이미 쓴 이 글을 또 쓰고

    몇 년 뒤에 꼭 같은 글을 쓸 뿐이다

     

    전철을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려 심호흡을 하면서 생각한다

     

    그 아이는

    내가 아는

    가장 시 잘 쓰는

    사람

     

     

     

     

    *시고구마와 고마워는 두 글자나 같네, 걷는사람, 2019

     
    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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